⎯ 데미안 리 개인전 《형태발생 Morpho-Genesis》 서문
판타 레이(panta rhei).1 불변의 진실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단순한 명제에 있다. 끊임없는 변화만이 존재의 본질을 드러낸다. 데미안 리는 언제나 과정 중에 있는 삶, 그로부터 형성되는 개인의 내면을 회화적 언어로 탐구한다. 그의 회화 속 이미지로 현시된 내면은 단번에 완성되는 일체가 아닌 역동적인 ‘상태들’의 모양을 취한다. 《형태발생 Morpho-Genesis》은 다수의 변화 끝에 근접할 수 있는 내면의 ‘상태들’을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빗대어 보여준다.2 이곳에서는 불완전한 것, 고정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것들 모두 자연스러운 가능태로 자리한다.
변화를 표지하기
데미안 리는 항구적인 질서 속에 매번 새롭게 솟아올랐다가도 이내 소실되고 마는 무질서한 감각에 주목한다. 그의 회화에서 질서와 무질서가 맞물리며 작동하는 세계는 고정된 형태마저 이어질 변화의 일부로 포괄한다. 이를테면 조각난 신체를 가로지르는 추상적인 패턴과 왜곡된 풍경,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이 파편화된 형상들은 그 행간을 통해 또 다른 이미지를 발현시킨다. 화면을 빼곡히 채운 이미지들은 이미 마련된 규칙과 배열 안에 머무르는 대신, 잇따르는 균열 안에서 스스로를 재구성한다. 고정된 형태의 앞과 뒤를 둘러싸며 번안되는 의미는 “시간과 경험의 두께”를 표지한다.3 여기서 ‘두께’란 특정 시점에 매듭지어진 상태들이 여러 겹 쌓여 이루는 것으로, 결코 정적이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존재의 변화 자체를 가리킨다. 달리 말해 변화를 표지하는 이미지는 상이한 상태들이 배어든 형식으로서, 하나의 화면 내에서 서로 다른 강도와 방향으로 공존한다.
자연–자아–회화
일상에서 체득된 감각은 생물의 세포처럼 증식하고 분화하는 과정을 통해 각자의 삶 속에서 고유한 형태를 이룬다. 데미안 리는 외재적으로 규명된 형상을 그대로 전유하지 않고 “내면 깊은 곳”의 감각을 다시 “이미지라는 껍질을 입혀 구현”한다.4 그가 유년기 자연에서 발견한 자유 – 위계나 규칙 없이 자생하고 조화를 이루는 존재의 힘 – 는 이렇듯 안으로 침투하는 것과 바깥으로 투영되는 것들 사이, 지속되는 변화를 거쳐 비로소 발현된다. ‘상태들’은 단순한 반복이 아닌 재인(再認), 즉 과거의 경험을 현재의 감각 속에서 새롭게 인식하고 종합하는 과정으로 작동한다. 궁극적으로 자연의 형태발생과 자아의 형성 방식, 회화의 작업 과정은 하나의 동일한 리듬 아래 이루어진다. 데미안 리는 이 순환의 리듬 안에서 자신을 재인하는 존재의 형식을 그려낸다. 이때 끝없는 과정 자체로서의 삶은 종결된 형태를 향해 수렴하지 않는다. 유예된 결론은 지속되는 생성의 힘을 통해 무수한 가능성으로 우리 앞에 놓인다.
⊹
데미안 리 개인전
《형태발생 Morpho-Genesis》
2025.10.10 - 10.22
BeF Storage
(서대문구 거북골로 37-10 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