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구하는 미래, 포화된 세계의 시선
⎯   김선종 개인전  
        《Scene-Opticon》 서문

                 

                    시선에 수반되는 것은 거리다. 인간은 신체 밖으로 투사한 도구를 통해 세계와의 거리, 곧 시선의 사정권을 확보해 왔다. 창조된 시선의 거리는 지구 생태계를 향한 안정적인 감시와 통제의 체계를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만연한 도구와 매체는 어느 순간 모든 공간을 포화시켰고, 거리는 붕괴됐다. 더이상 “어떤 외부도 없는 인간”은 모든 것이 뒤얽힌 세계에서 관찰자로서의 지위를 잃었다.1 김선종은 역감시의 대상이 된 인간과, 감시의 주체로 부상한 비인간의 시선이 교차하는 연극적 무대를 연출한다. 《Scene-Opticon》은 전치된 시선의 구조를 경유해 인접한 미래의 교란된 생태계를 상연한다.2  이 사변적 세계관은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사라진 초유기체적 생명체에 대한 가설 위에 세워진다. 관객은 변화의 시초를 함께 목도하는 또 다른 목격자이자 응시의 대상으로서, 뒤섞인 전체성의 장면(scene)에 연루된다.    

                   연극의 본질이 ‘보여주기’와 ‘지켜보기’의 상호작용에 있음을 상기할 때, 두 행위가 예속된 주체 사이에는 투명한 막 – 제4의 벽 – 이 놓인다. 무대와 객석을 가르는 벽은 감시와 노출의 경계를 구획한다. 김선종은 이처럼 관객과 배우 간에 암묵적으로 합의된 거리 두기의 장치를 전시장으로 옮긴다. 이는 이미 허구와 같은 현실을 살면서 임박한 미래를 외면하는 우리의 태도를 가리킨다. 분명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음에도 못 본 척 눈 가린 시선 속에서 장면은 지속된다.
   
                   응시의 전도는 질료(matter)가 형상(form)을 잠식하는 개별 작품의 짜임새에도 적용된다.3 형식으로 환원되지 않는 재료의 물질성은 작업의 형상과 서사를 이끈다. 플라스틱 조각과 우레탄 폼, 실리콘, 폐의약품 등의 산업 재료와 화학 물질은 더 이상 외부적 오염원이 아닌 세계의 일부를 구성하는 질료로서 형상을 조직한다. 이들은 사이포노포어(Siphonophorae)와 같은 군체적 형태를 띤 채, 새로운 생명체에 전이된 인간성의 잔여를 가시화한다. 이를테면 인간의 개성을 드러내는 의복 문화는 옷 입은 인공 생물의 모습으로 구현되고(〈Soft tooth〉(2025)), 버려진 의약품은 생명 활동의 흐릿한 흔적으로 전시장에 배치된다(〈A jelly bar〉(2025)). 전시장의 중심에 놓인 〈Eyes Behind Eyes〉(2025)는 등대처럼 주변을 훑으며 서로를 마주 보는 존재들과 그들의 시선을 비춘다. 이곳에 고립된 사물을 위한 자리는 없다. 모든 것은 보고 보여지는 관계 안에 무질서한 밀도로 뒤얽힌다.4

                   김선종은 “형식이자 내용이며, 주체이자 객체이고, 자연이자 문화인 전체성 속의 물질”을 연극적 장면으로 호출한다.5  《Scene-Opticon》은 미래를 순수한 디스토피아나 낭만적 회복의 서사로 포장하지 않고, 곧 현실이 될 가능성의 상태로 펼쳐 보인다. 이를 매개하는 메타적 장치들은 파국도 구원도 아닌 변위의 장면을 구성한다. “형상과 상징의 중재”를 통해 전망을 생산하는 예술의 형식은, 거리가 와해된 세계 속에서도 비판적 거리를 창출해 내는 도구로 작동한다.  미적 언어가 열어 둔 공백은 포화된 공간에 일말의 여지를 마련해줄 것이다. 요청된 응시가 향하는 곳에서, 우리는 우리를 바라보는 우리 아닌 우리를 본다.  
 


1.니콜라 부리오, 김한들ㆍ노태은ㆍ안소현 역, 『플래닛 B: 기후 변화 그리고 새로운 숭고』, 이안북스, 2023, p.30-33.


2. 사회학자 토마스 매티슨(Thomas Mathiesen)이 제안한 시놉티콘(Synopticon)은 다수가 소수를 감시하는 역감시 체계를 의미한다. 김선종은 시놉티콘에 ‘장면(scene)’을 결합해, 인공과 자연이 서로의 장면을 응시하는 다층적 감시 상태를 ‘Scene-Opticon’이라는 개념으로 지칭한다. 

3.
부리오, 앞의 책, p.36. 

4.
같은 책, 같은 쪽. 

5.
같은 책, p.47.  

6.
같은 책, p.31. 




《Scene-Opticon》
김선종 개인전


2025.12.20. -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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