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민우 개인전 《허물과 궤적》 critic
서민우 개인전 《허물과 궤적》 전시 전경 | 사진 스튜디오 아뉴스
편협한 증언
첫 번째 기억은 지난 8월 아케이드 서울에서 마주한 서민우의 공연 《허물과 궤적: 궤적들》로부터 기인한다. ‘목격한 공연’이라 썼다가 구태여 ‘마주한 공연’이라 고쳐 쓴 이유는 후술하려는 기억이 목격한 것의 범위를 한참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바닥을 덮고 있는 녹진한 상태의 라텍스를 밟으며 한시적으로 공연장이 된 그곳을 서성였다. 늘어진 케이블 틈을 메우는 것은 좀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면들이었다. 발 아래 늘어진 라텍스는 온전한 사물이 아닌 옅은 질감으로, 아직 무엇이 될지 모를 원형의 모습으로 내내 채이고 짓이겨졌다. 공연에 동원된 아홉 개의 음원은 미리 상정했던 청취의 경험을 계속해서 부정하는 방식으로 재배치되었다. 끈적임, 미끌거림, 짧은 순간 고조점을 향해 나아가는 듯하다가도 산산이 흩어지던 소리의 다발들. 한 시간가량 이어진 무더운 날의 공연은 끝내 손에 잡히지 않는 묘연한 감각으로 남았다.
두 번째 기억은 짧은 공백 후에 열린 서민우의 개인전 《허물과 궤적》에서 기인한다. 11월에 다시 찾은 아케이드 서울에서, 발밑에 놓였던 라텍스는 꽤나 큰 몸짓을 가진 ‘허물’의 형태로 나를 맞이했다(〈궤적들: highpass〉, 〈궤적들: bandpass〉, 〈궤적들: lowpass〉(2025)). 직립한 허물을 뚫고 흘러나오는 것은 서로 다른 음역대로 나뉘어 재생된 공연의 음향 기록이었다. 작품의 캡션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 나는 그것이 공연에서 출발해 전시장에 도착한 소리들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들려오던 소리가 가리키는 곳에는 하나의 기점으로 고정된 공연이 아닌 공연과 전시 사이의 어렴풋한 간격이 있었던 까닭이라고, 뒤늦게 헤아려 본다. 마주한 소리와 조형은 셈할 수 있는 간격의 끝점이 아닌 간격 자체를 지시하는 기호로 자리하고 있었다. 1
서민우, 이용빈, 〈궤적들: highpass〉, 2025, 스테인리스 스틸,라텍스, 오디오 케이블, 트위터 스피커, 앰프, 음원: 공연 〈허물과 궤적: 궤적들〉 녹음, 230x80x100cm, 2시간 40분 40초 | 사진 스튜디오 아뉴스 (오)
구체성을 띠고 있던 음원이 공연의 맥락에서 해체되고, 공연의 현장을 기록한 소리와 물질이 전시장 안에서 변주될 때, 모든 것은 반복되었지만 전부 새로울 따름이었다. 음반 – 공연 – 전시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서 반복은 매번 새로운 간격을 만들어냈다. 그 속에서 지속된 청취의 사건은 자리바꿈의 자취로서 나선형의 궤적을 남겼다. 한때 벌어진 두 사건이 서로의 밖에서 위치를 달리하며 구별된다 하더라도, 마주한 시간들은 중첩된 기억 내에서 상호 침투한다. 그러므로 나는 두 사건에 관한 현재의 기억을 포개어 말할 수밖에 없다. 전시에 관해 쓰기로 약속한 글에서 공연의 기억을 호출해 시작했던 사정 또한 여기에 있다. 한편으로 마주하지 못한 청취의 사건 – 7월의 청음회 – 은 글에서 누락되기도 했다. 구태여 치우친 기억을 순차적으로 늘어놓은 이유는, 개별 사건들이 셈할 수 있는 계기(succession)의 순간이면서 언제나 구별되지 않는 공존의 층위로 겹쳐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겹침 안에서 시간은 선형적 흐름이 아닌 지속(durée)의 흐름으로 경험된다.2 하나이자 여럿인 《허물과 궤적》은 지속의 궤적을 상이한 시간과 동일한 공간의 축 위에 펼치고 있었다.
서민우 개인전《허물과 궤적》 전시 전경 | 사진 스튜디오 아뉴스
경합하는 위계, 잠재적 무한
다시 전시의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보자. 서민우가 결집한 복수의 지속 안에서, 파생된 사건들은 변화하는 관계의 매듭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변화는 단순한 움직임이 아닌 위계의 교환을 의미하는데, 이는 개별 작업의 소리와 조형, 작업과 작업이 맺는 관계, 시각과 청각이라는 감각의 차원 모두에서 발생한다. 이를테면 서로를 보조하지 않는 소리와 조형은 나선형 구조 내에서 번갈아 우위를 점한다. 나는 소리의 층위를 가려내기 위해 눈으로 스피커의 위치와 형태를 더듬고, 반대로 불충분한 시각 정보 대신 청각에 의존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소리의 외피로 작동하는 조형, 조형의 골조를 드러내는 소리는 서로를 겨냥하며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환원되지 않는 팽팽한 매듭을 지었다. 마디마다 형성된 위계는 언제든지 전복 가능했고, 전시장을 누비는 동선과 선택에 따라 다른 모양의 관계로 재배치되었다. 따라서 소리와 조형, 시각과 청각 중 무엇이 중요한지를 판가름하는 일은 불필요했다.3 다만 두 감각을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일은 중요했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감각의 경로에 따라 나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경로를 택하든 동일한 세계일 뿐이다.4
고착된 위계의 부재는 곧 무한한 반복과 변주의 상태로 이어지기도 했다. 2층 공간에 놓인 세 작업 – 〈howled room〉, 〈howled gyre〉, 〈howled feedbacking〉(2025) – 은 제목이 암시하는 공명 현상을 다수의 부분과 그 합으로 짜여진 단일한 전체로 구현한다.5 나는 세 개의 스피커 사이, 즉 소리의 직선적 원인이 아닌 복수의 결과들이 얽힌 삼각형의 중앙에 서 있었다. 이곳에서의 청취는 단일한 원인-결과의 방향성을 잃고, 반복되는 되울림과 겹침 속에서 변주된 상황을 일으켰다. 나와 다른 누군가는 7분 30초간 이어지는 동일한 음원을 다른 시간대와 시점에, 다른 위치에서 경험하게 될 터였다. 그런데 전시장에 조성된 청취의 다수성은 음원 작업의 과정에서 이미 획득된 것이기도 했다. 서민우는 주로 핸드 레코더를 통해 공간을 녹음한 뒤, 녹음된 소리를 다시 재생, 재녹음하는 절차를 반복해 왔다. 이는 스스로를 향해 무한히 수렴하는 회로를 형성하며, 이미 발생한 피드백과 지금도 진행 중인 루프 가운데에 놓인 중간의 시간을 가리켰다. 수학에서의 ‘극한’이 특정 값에 도달하는 대신 그 값에 임의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지시하듯, 의도된 하울링(howling)은 결코 도달되지 않는, 그러나 끝없이 증폭되는 상태로서의 잠재적 무한을 향한다.
잠재적 무한의 상태는 전시장 가장 안쪽에 놓인 작업에서 보다 직관적인 조형으로 응축되었다. 〈converge floor〉(2025)에서 진동 스피커가 부착된 돌, 아래 위로 휘어진 철판은 단단히 박힌 못을 사이에 둔 채 장력을 축적하고 있었다. 서민우는 못이 아주 긴 시간을 거쳐 진동하는 돌을 갉아먹고, 종국에는 철판과 철판이 서로 맞닿는 수렴의 순간을 상상하며 작업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시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는 그 순간이 절대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나는 그가 한 뼘 남짓하게 벌려 둔 철판의 물리적 거리에서, 영원히 중첩될 계기들의 두께를 가늠해보았다. 눈앞과 귓가의 진동은 함께 누적될 미세한 변화들로 하여금 잠재된 무한이 향할 그곳을 감각하도록 했다. 외적 표상으로 파악된 소리는 더이상 바깥에 놓인 사물이 아닌 진동하는 세계의 일부로 공간을 메웠다.6
서민우 개인전《허물과 궤적》 전시 전경 | 사진 스튜디오 아뉴스
나선형 기억
《허물과 궤적》에서 서민우는 소리의 지향성을 통해 주어진 공간을 읽어야 할 단위로 매듭짓는다. 소리와 조형은 공간 위에 투사된 시간, 달리 말해 동질적 장소로 간주된 시간을 모방하며 나선형의 궤적을 그려 나갔다. 나는 이 불완전한 기호를 지표 삼아 취할 수 있는 가능한 행위들을 견주어 보았다. 쇄도하는 소리와 조형은 그것이 재현하는 무엇이 아닌, 내가 취하게 만드는 태도에 의해서 작용해왔다.7 시차를 두고 열린 공연과 전시, 위계를 달리하는 낱낱의 요소들은 하나이자 여럿인 길을 통과하며 장소들 사이를 이어주었다. 이제 나는 멀리서 돌아본 그 길들이 나선의 형태를 띠고 있었음을 편협하게나마 기억한다. 나선의 이미지는 목격한 것의 너머와 배후에서 능동적인 계기로 자리한다. 이는 같은 자리를 반복해 지나가지만, 결코 동일한 위치로 돌아오지 않는 기억의 자취를 닮아 있기도 하다. 곁하여 있지 않고 서로에게 침투하는 두 개의 기억은 개별 음들로 조직된 하나의 선율처럼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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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우 개인전
《허물과 궤적》
2025.11.7 - 12.3
아케이드 서울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 128길 23)
기획ㅣ윤여울
디자인ㅣ장민혜
프로젝트 매니저 | 김혜은
공간 디자인 | 이용빈, 최봉석
기술 도움 | 노윤래
주관 | 아케이드 서울
제작 지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