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주홍 개인전 《인접순 원칙》 review
물건은 많고 정리정돈에는 아무래도 소질이 없다. 제법 보기 좋게 갈무리할 수는 있겠으나 온전히 구획된 질서를 갖추기에는 늘 어딘가 모자라다. 나름의 체계를 갖춰 가름해 두더라도 으레 분류에서 벗어나는 것이 있는 까닭이다. 셈할 수 있는 손가락 수를 넘어 범주 밖에 놓인 사물과 마주할 때면 매번 미간을 좁힌다. 연거푸 미끄러지는 파편들을 욱여넣다 문득 내가 꾀한 문제의 갈래에서 스스로 미궁에 빠졌음을 깨닫는다. 애초에 기능과 쓸모가 모호한 것들을 빈틈없이 가다듬기란 불가능한 일일 테다. 줄곧 웃돌던 명사들은 잉여의 속성으로 하여금 엉뚱한 모양의 답에 이른다. 예기한 오답에 수고로이 도착할 무렵엔 자의적으로 구현된 질서 모두 잇따른 실패로 귀결된다.
두어 달 전 찾은 강주홍의 개인전 《인접순 원칙》은 정연한 사물들이 저마다 마땅한 자리에 들어선 장소처럼 보였다. 분류와 명명이 건조한 제도의 문법이라면, 그림과 조각은 체계의 그물망을 틈마다 빠져나가는 녹녹한 성질의 사물이다. 그럼에도 전시장은 말끔히 정돈된 서가처럼 짐짓 경쾌한 인상을 주었다. 전시를 하나의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던 작가의 말마따나, 서로를 참조하고 보완하는 작업들은 알맞은 레이아웃 안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는 듯했다. 도서관 십진분류법의 열 개 주류(000–999)에 할당된 열 개의 캔버스, 책장과 서가용 디딤판을 흉내 낸 나무판자들, 짝을 맞춰 대칭을 이룬 모니터와 스피커… 맥락과 속성에 맞게 배치된 이들은 하나의 거대한 책이자 작은 도서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미지와 작품의 임시 거처인 전시장을, 텍스트와 책이 거주하는 도서관과 겹쳐 보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중립적이고 견고한 공간이라 여겨지는 도서관이 실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유동적인 장소임을, 책의 분류와 보관, 폐기가 곧 선택과 배제의 정치적 행위임을 상기할 때, 이곳에 마련된 질서 역시 이미 조금씩 어긋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단정해 보이는 질서는 고정된 의미가 아닌 이웃한 사물들이 맺은 일시적 합의에 가까웠다. 완벽한 질서라는 오래된 환상은 강주홍이 자발적으로 종속된 규율 아래 ‘잘’ 수행됨으로써 도리어 그 한계를 드러냈다.
강주홍, 〈KDC(DDC) 000-999〉
2025, oil on canvas, paper, arcylic, silkscreen, 97x193.7cm | 사진 한보경
불완전한 분류를 축으로 포개진 도서관과 미술관은 다시 회화와 인쇄라는 좁은 시야 안에 여러 겹의 이미지로 재배치되었다. 초점 거리를 달리하며, 작가는 멀리 배열된 장면을 볼 때와 하나의 그림을 눈에 가득 담아 볼 때의 미시감을 생각했다. 〈KDC(DDC) 000–999〉(2025)는 국립중앙도서관의 각 분류 기호에 해당하는 첫 책과 마지막 책의 첫 번째 페이지를 회화로 옮긴 작업이다. 전시장의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열 개의 회화는 인접한 서로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획득했다. 공간의 층위에서 작동하던 인접순 원칙이 캔버스 내부로 침투한 모양새였다. 단일 이미지(또는 페이지)가 아닌 나열된 여러 개의 인접면은 그것이 연유하는 책의 규칙 속에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었다. 이 시도 안에서, 무수한 정보 가운데 일부를 옮겨낸 회화는 한정된 질서가 전제하는 객관적인 무한을 생각하게 했다. 유용성의 체계를 모방하며 무용한 것들을 늘어놓는 재현 방식에 구태여 이름 붙인다면, 그것은 ‘목록’, 또는 ‘카탈로그’가 될 것이다.1
충실한 목록의 진술은 질서를 구현하지 않고 그 제약 속에 남는 잉여를 포괄한다. 질서는 목적이 아닌 조건으로, 질서 바깥의 것들을 가리키기 위한 틀이 된다.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기에 발생한 잉여는 “진술이 곧 사건”으로 나아가게 만든다.2 이미지의 배열과 그 공간적 구성으로 이루어진 전시 또한 같은 규율에 빚져 유일한 사건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모든 질서의 전제에 있던 관용적 상상은 나아감의 마지막 과정까지 깨어지지 않는다. “환상이 그것을 억제하는 시스템을 부수고 나오기 위해서는 세심한 관리와 양성, 규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3 유사한 공정을 거쳐 다듬어진 작업은 확립된 체계에 체계 밖의 요소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이를테면 여러 평면에 동원된 실크스크린은 정확성을 요하는 기술임에도 신체의 크기와 힘이 들어가는 정도에 따라 필연적인 편차를 동반한다. 캔버스에 덧씌워진 장지의 질감, 표면 위로 새겨진 잉크의 뭉침과 빗나감은 예상치 못한 결과와 통제된 환상 사이를 수차례 왕복했을 작가를 떠올리게 했다.
강주홍, 〈KDC(DDC) 000-999〉, 2025, oil on canvas, paper, acrylic, silkscreen, 97x193.7cm | 사진 한보경
다음으로 인쇄된 이미지에 더해진 붓질은 분류 체계 내에 쓸모없는 것으로 구분된 요소들—밑줄과 낙서, 곰팡이, 종이의 찢김과 얼룩—을 화면 안에 들였다. 책이 도서관에 머물며 축적한 상이한 형태의 시간은, 곁하여 있는 사물들의 미미한 약동을 가시화했다. 드물게 주어진 가시성의 표면에서, 나는 “완성된 것에 대한 환상과 파악할 수 없는 것을 마주했을 때 생기는 현기증 사이”를 부단히 오갔다. 완성된 것이 있다고 여기며, “단번에 지식에 이를 수 있게 해줄 유일한 질서가 존재한다고 믿는” 뭉툭한 습관에 대해 생각했다. “파악할 수 없는 것을 고려해 질서와 무질서가 우연성을 가리키는 두 개의 같은 말”이라 여기는 관성에 대해 생각했다.4 그럼에도 추상적 체계가 아닌 손과 몸의 행위로 다져진 이곳의 질서가 무뎌진 인식으로부터 틈틈이 달아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종이를 골라 잉크를 바르고, 조심스레 얹은 획으로 표면을 다진 뒤 그것들이 걸릴 벽의 높이를 가늠해 보기 좋게 정렬하는 일. 예속된 제약과 갖춰진 조건, 늘어놓은 목록 안에서 취할 수 있는 미세한 차이를 헤아리는 일. 강주홍은 통제를 벗어난 것들끼리의 차이를 완만하게 봉합하기 위해 관계를 부여하고 연속성을 가정했다. 선재하는 분류 체계로부터 빌려온 이름과 숫자는 완결된 서사에 관한 착시를 일으킨다.
우연의 편리함에 믿음을 덧씌워 눈 가리는 대신, 강주홍은 한 번 더 멀리 거리를 두었다. 〈85 questions〉(2025)에서 작가는 분류 체계를 수행하는 타인의 경험을 호출한다. 미술아카이브와 미술은행, 도서관과 독립 서점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작가가 던지는 질문에 따라 답변을 건넸다. 꼼꼼히 설계된 많은 양의 질문은 분류가 언제나 매끄럽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계속 작동해야만 하는 제도의 조건임을 드러냈다. 가장 귀 기울여 듣게 되는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의 수집과 분류에 관한 마지막 질문이었다. 여기서 분류는 개인의 선택과 판단, 의미 부여의 과정을 통해 어렴풋한 윤곽을 나타냈다. 사물의 역할과 가치, 세계와의 관계 속에 정립된 질서는 이를 수행하는 사람의 언어를 통과하며 비로소 구체화되었다.
다시 전시장으로 돌린 시선에는 널찍한 창문에 덧대어진 다갈색의 실크스크린 이미지가, 어떤 촘촘한 그물에도 좀처럼 사로잡히지 않는 시간과 함께 놓여 있었다(〈불레가 상상한 이상적인 도서관의 설계도〉, 2025). 전시가 열리는 2주 남짓 머물다 사라질 이미지는 그곳에 놓인 모든 사물이 거치게 될 생애주기를 현시했다. 기억할 사물은 고정된 정의나 범주에 예속되지 않는 유동적인 상태를 가진다. 그러니까 명사적 존재가 아닌, 시간과 함께 있는 상태적 존재로서 사물은 모든 고정된 체계로부터 빠져나간다. 자연광 사이로 비치는 먼 과거의 환상을 보며, 나는 이곳에 축적될 시간 또한 마련된 질서 내부에서 천천히 침식해 갈 것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완벽한 질서가 세계를 하나의 구조로 수렴시킬 수 있다는 무모한 믿음은 거듭 유예되었다. 체계적인 질서에서 찾아낸 가장 비체계적인 것들은 앎의 진실한 부분으로 끝끝내 남는다. 이루어지지 못한 환상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그 지연을 통해 영속하는 장면을, 강주홍은 상상한다.
강주홍,〈불레가 상상한 이상적인 도서관의 설계도〉, 2025,silkscreen on window, 155x432.5cm | 사진 한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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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홍 개인전
《인접순 원칙》
2025.11.20 - 12.7
캡션 서울
(서울 용산구 원효로81길 5, 2층)
주최·주관 ㅣ 강주홍
후원ㅣ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2025년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