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여진 개인전 《바깥과 바깥》 review
윤여진, 《바깥과 바깥》 전시 전경 | 사진 김진현
Prologue.
모든 매개는 경계를 전제로 한다. ‘전제’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선후관계에 의하면, 앞선 경계 후에 매개의 행위가 뒤따른다. 정말 그런가? 실제로 일상에서 경험하는 매개는 경계를 인식함과 동시에, 혹은 그보다 먼저 오기도 한다. 가장 단순한 예를 떠올려 보자. 여기 이곳과 저곳을 구분 짓는 문이 있다. 문이 다른 두 곳을 구분 짓는 경계이자 접면이라면, 문고리는 경계를 넘나들게 하는 장치로서 닫힘과 열림 사이에서 이동을 매개한다. 먼저 문이 있고, 문을 여닫기 위한 문고리가 뒤이어 작동하는 것이라 판단하기 쉽지만 기실 문과 문고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때문에 일방적인 전제는 성립될 수 없다. 문고리는 문이라는 경계를, 문은 자신을 열거나 닫는 문고리를 필요로 한다. 그러니까 문과 문고리, 경계와 매개는 먼저와 나중이 아닌 ‘함께’의 관계를 맺는다. 함께일 때, 문고리는 분명 다른 곳이 있을 거라는 약속의 형태로 우리 앞에 놓인다. 문고리를 쥐는 일은 곧 약속이 담보하는 곳으로 향하겠다는 의지이다. 약속과 의지가 잠정적으로 이루는 가능성의 막으로서 문은 경계가 아닌 접면이 된다.
Episode 1. 사물의 안쪽에서
윤여진은 무엇을 보여주기보다 그것이 보여지는 조건을 탐구하는 데에 관심을 둔다. 높은 문턱을 둔 공간 곳곳에서 마주하는 것은 고유의 물성을 토대로 연결된 여러 점의 입체 작업이다. 이들을 조각도 설치도 아닌 ‘입체 작업’이라 칭하는 이유는 작가에 의해 부여된 형상이 거듭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도 이전에 놓인 사물의 원자적 상태에 관심을 가지는 윤여진에게, 형상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명되는 것이다.1 이를테면 실과 석고를 합사하여 세운 〈(18+18)+ 18x•••〉(2025)는 서로의 힘을 나누도록 설계된 구조 밖의 모든 조형적 제스처로부터 벗어나 있다. 물리적 법칙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된 형태는 덧씌워진 의미 대신 내부의 조건을 현시한다. 이처럼 성질과 목적에 따라 쉽게 변형되고 곧잘 버려지는 사물들 – 실과 석고, 합판, 철과 왁스 – 은 의도된 형상 바깥에서 안쪽의 본질을 드러낸다. 각각의 물성이 지닌 한계는 다른 가능성으로 향하는 지렛대가 된다.
한편 선별된 사물의 피동성은 윤여진이 행하는 소극적인 개입을 통해 여러 차례 뒤집힌다. 이들은 자신의 한정된 조건으로부터 응답을 요청해 오는, 관계의 시작점에 자리하는 능동적인 존재이다. 윤여진이 우연히 발견한 석고보드 속 유리섬유와 기공처럼(〈P-gf 무한 소용돌이 V2〉), 은폐된 속성과 그로 인한 한계는 관심의 체계를 낳는 현실의 겹으로서 잠재성을 지닌다.2 한눈에 굽어볼 수 없는 잠재된 조건은 다시 관점의 변화를 불러오고, 특정한 조건 아래 파악됨으로써 안과 밖의 구조를 뒤집는다.
Episode 2. 바깥으로
윤여진이 택한 사물들은 관찰과 개입 안에서 의식이 향하는 ‘지향적 대상’으로 전환된다. 특정한 의미 관계를 획득한 개별 작업은 전시장에 함께 놓이며 유기적인 ‘의미장(field of sense)’에 들어선다.3 실재하는 의미장, 전시라는 특수한 사건은 “가능한 관계들의 얽힌 지점”을 가시화한다.4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가능성의 영역에서 여전히 지반을 이루는 실체로서의 한계이다. 윤여진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조건으로 하여금 그 너머로 추동하는 상상력의 당위성을 확보한다. 여기서는 ‘전제’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저마다의 한계를 전제로, 작가는 사물들이 서로를 향해 개방되는 접면을 상상한다. 이때 동반되는 다양한 형태의 가정은 극복하고자 했던 현실의 조건을 가장 적나라하게 현실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상상은 도피를 위한 허구적인 도약이 아니라, 바로 그 현실의 구조를 드러내는 사유적 장치가 된다.
상상을 통해 바뀌는 것은 형태가 아닌 위치다. 복수의 사물들 사이에 관계로만 존재하는 위치는 공간이 아닌 시간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2025년 8월 30일의 캡슐〉(2025)은 내구성을 위해 가공된 미송합판이 본래의 형태와 결을 되찾아 가던 한 순간을 현재에 위치시킨다. 습기를 머금어 휘어지고 약해진 나무는 언젠가 썩어 없어지겠지만, 내열 퍼티로 보존된 형태는 미래의 현재에도 과거의 한때를 증거할 것이다.
윤여진, 〈찢는 고리〉, 〈이중가닥 워프〉, 〈Square bridge〉, 2025 | 사진 김진현
Epilogue. 바깥에서 바깥으로
전시장에는 각 작업의 위치 변환을 가능케 하는 몇 개의 단서들이 함께 놓여 있었다(〈찢는 고리〉, 〈이중가닥 워프〉). 군데군데 왁스가 덧입혀진 문고리와 철조망은 본래의 쓰임과 물성이 흐려진 모양새로 실과 석고 기둥, 미송합판의 곁에 놓였다. 이들이 가리키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한계 속에서도 그 바깥을 상상하려는 시도이다. 윤여진은 미술이야말로 그러한 태도가 허용되는 곳이라 말한다. 상상, 결코 실재와 동떨어진 과정이 아닌 지향적 대상을 파악하는 방식으로서 판타시아(phantasia)는 늘 확장 가능한 상태의 관점을 우리와 우리 앞의 사물에 부여해준다. 미술은 언제나 함께인 현실과 허구의 장막을 사이에 두고, 그 경계를 여닫게 해주는 몇 안 되는 문고리이다. 《바깥과 바깥》은 이제 막 문고리를 손에 쥔 사람의 의지로 열린 일시적인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바깥을 그리며 행해진 모든 약속과 시도, 가정과 상상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무언가를 선취하는 형식으로 또 다른 바깥의 전제가 될 것이다.
윤여진, 《바깥과 바깥》 전시 전경 | 사진 김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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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진 개인전
《바깥과 바깥》
2025.9.26 - 10.18
LDK. DT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653-4, 지하)
주최, 주관 ㅣ 윤여진
후원 ㅣ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2025년 청년예술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