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이안 개인전 《야간 개장》 서문
해가 지고 먼동이 트기 전, 한밤에 문을 연 이곳에는 낮에 도착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습기를 머금은 채 모여든다. 미루어 둔 결론은 소망과 두려움이 한데 섞인 꿈처럼 어지러이 맴돌고, 속단하지 못해 매립된 감정은 서로를 향해 질척인다. 모든 유예된 의미는 바깥의 명료함이 무색하도록 불투명한 상공을 선회한다. 《야간 개장》은 답보 상태에 놓인 불안정한 기표들을 전도된 시간의 보호 구역 안으로 밀어 넣는다. 보호의 목적은 안전한 착륙, 해소와 극복, 평형의 지향에서 벗어나 불온한 긴장을 지속하는 데에 있다. 오직 혼재된 감각만을 비틀어 전시하는 이곳에서, 초대받은 이들은 우묵한 경계의 길목에 선다.
계단을 올라 마주한 파란 문의 전시장에는 섬뜩하리만치 선명한 이미지들이 불가해한 모습으로 자리한다.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마모된 환상에 이입하고 빠져나오기를 요청하는 기호들이 있다. 응시에 뒤따르는 섬뜩함은 일차적으로 소재를 다루는 작가의 건조한 태도에 기인한다. 숨이 붙은 생명을 차가운 수술대나 도마 위에 올리듯, 최이안은 영상에서 포획한 움직임을 정지된 캔버스의 얇은 표면 위로 옮겨 온다. 유동적인 이미지와 침묵하는 회화를 오가는 일은 곧 취약함 이면의 위협을 뒤집어 보여주는 일과 맞물린다. 점막질의 조갯살 위에 덧붙여진 단단하고 영롱한 진주알(〈Graveyard〉, 2026), 종이학의 무해함이 품고 있는 날 선 칼날의 형태(〈Aggressive pink〉, 2025)에는 연약함과 폭력성이 함께 도사린다. 오가는 양극단은 “아리송한 거리감”1과 함께 몰입과 와해를 이끈다.
전시에서 불쾌한 만큼 우리를 매혹하는 이미지들은 비체(abject)와 수사(rhetoric)의 형상을 입고 잔혹한 풍경을 폭로한다. 최이안은 생명과 죽음을 표지하는 도상 위에 장식적인 이미지를 포개며 얄팍한 판단을 재차 지연시킨다. 이를테면 〈Ruby〉(2026)는 뿔도마뱀의 생존 방식을 보석의 고귀함으로, 또는 과장된 장식품의 화려함으로 치환한다. 포식자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뿜어낸 눈가의 핏자국을 반짝이는 루비 보석처럼 묘사하는 식이다. 〈Untitled〉(2026) 역시 탈피 과정에서 속살을 드러낸 게의 모습 위로 붉은 실이 꿰매어진 흔적을 겹쳐 보여준다. 하나의 장면에 공존하는 생명의 절박함과 장식적인 외피, 취약한 생장 과정과 봉합의 이미지는 양가적인 감각을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시각화한다. 이로써 “활성화된 유예 상태”2는 공포와 아름다움에 내재된 관습적인 시선을 교란한다. 본래의 맥락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껍데기만 남은 이미지들은 반대급부의 효과를 통해 주어진 성질을 은폐하고 노출시킨다.
최이안이 틀지어 배치한 도상은 이처럼 부여받은 속성과 급박한 사태로부터 미끄러진다. 허락된 이탈은 이들을 가두는 틀과 그 매체적 특성을 집요하게 상기하는 데에 이른다. 〈Circle〉(2026)은 이미지 내부에 결속되어 있던 심미적 패턴을 외부의 틀로 확장한 작업이다. 좁은 환경을 맴도는 고래와 수조의 틀, 이를 연장하여 가시화한 캔버스의 프레임은 회화의 환영을 지탱하고 구속하는 파레르곤(parergon)의 역설을 은유한다.3 내부를 틀 짓는 동시에 외부로부터 내부를 구획하는 파레르곤은 경계에 있으면서 경계의 구조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물리적인 프레임을 통해 두드러지는 것은 사물성의 반대편에서 강화되는 회화의 극단적인 평면성이다. 이러한 전략은 동명의 회화와 조형 작업 〈Shape of protection〉(2026)에서 또 한 번 변주된다. 서로의 뿔에 엉켜 죽은 사슴 이미지와 울타리의 미감만을 탈취해 온 조형물은 기능을 잃고 오로지 그 장식성만 남은 텅 빈 기호를 제시한다. 소거된 맥락은 다만 남아 있는 프레임으로서의 형상이 안쪽의 상황을 구성하도록 내버려둔다. 이제 보호라는 명목하에 마련된 장치들 – 보호 구역으로서의 전시장과 울타리, 캔버스의 틀과 그 형상 – 은 양쪽으로 팽팽히 결박된 상황을 영구히 유예하며 거리를 유지한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얇은 막으로 위장하고 있던 여러 겹의 경계들은 현실에 실재하는 인위적인 낙원, 모든 장소의 바깥에서 비로소 모습을 비친다. 잇따르는 균열과 폭로는 철저히 통제된 이곳이 처음부터 관찰과 소비를 위해 마련된 장소임을 드러낸다. 긴긴 여로를 마친 후에도 밤은 여전히 밤으로, 낮의 반대편에 서 있을 테다. 최이안은 밤에 문을 열기 위해 다시 낮으로 걸어간다.
최이안 개인전
《야간 개장》
2026.4.18 - 5.10
그블루 갤러리
(서울 중구 충무로5길 2, 3층 3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