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봉균 신종찬 이종환 《옥수수 팝콘 부스러기》 서문
“ 그는 무한하게 연속된 시간들을 믿었어요. 분산되고 수렴되고 병렬적인 시간들로 구성된 점차로 커져 가는 어지러운 시간의 그물망을 믿었던 거지요.”1
시간은 의도된 행위와 그 인과적 결과의 연속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것과 이미 지나간 것이 현재의 의식 안에 다시 배열되면, 가까스로 붙잡은 현실은 희미한 이미지로 맺힌다. 분기하는 시간은 좀처럼 파악할 수 없는 변수들과 관계하며 매 순간 미끄러진다. 현재의 지각은 수많은 경험과 기억, 감각과 판단이 매듭지은 일시적인 구성물일 뿐이다. 거듭해서 재배치된 시간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나아갈 때,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은 그중 하나의 흐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팝콘.옥수수.부스러기》는 여러 현실이 교차하는 지금-이곳의 짜임에서 시간의 서로 다른 위상을 제시한다. 복수의 시공은 현실의 반대가 아닌 현실을 구성하는 모종의 방식으로 자리한다. 권봉균, 신종찬, 이종환은 각인된 시간의 존재 형식을 저마다의 단면으로 드러낸다. 작업은 단면의 한계를 직시하며 이미지에서 물질로, 다시 이미지로 이행해 간다. 연루된 움직임에 시간이 잠시 깃든다면, 이곳에 놓인 회화와 조각은 시간 속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얄팍한 외연이 아닌 시간의 두터운 내부에서, 우리는 하나이자 여럿인 경험(들)을 맞이한다.
권봉균의 회화는 대상을 지각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경험이다. 기억에 젖어 있지 않은 지각은 없으므로, 현재의 감각에는 과거 경험의 무수한 세부가 섞인다.1 화면에 쌓인 시간은 관람의 시간과 포개어지며 다른 국면에 접어든다. 형상은 마주한 그림과의 거리, 바라본 시간에 따라 좁고 넓은 시야의 폭에서 저물거나 떠오른다. 이 과정은 지각의 순간에 과거의 상(像)을 상기시킬 수 있는 한정된 실마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작가가 ‘막’이라 부르는 얼룩, 또는 그것들로 이루어진 ‘손상된 이미지’는 그려진 형상을 덮거나 드러냄으로써 보고자 하는 욕구를 일으킨다. 눈가를 비비며 바라본 이미지는 언뜻 반복되는 듯하지만, 이내 작은 것의 전체(〈Camouflage〉, 2026; 〈Web〉, 2024-2026), 큰 것의 부분(〈산책〉, 2026)으로 계속해서 가까워지고 멀어진다. 지각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서의 기억 역시 현재에 과거를 기워 넣으며 지속(durée)의 여러 순간을 하나의 직관 안에 축적한다.2 권봉균의 그림에서 리얼리티는 이처럼 보고 있는 것과 보았던 것,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불완전한 이미지를 통해 구현된다.
신종찬은 닥 섬유라는 회화의 바탕 재료가 바닥으로부터 자립하는 형태와 그 과정에 몰두한다(〈바닥에서부터, 몸이 멈춘 자리마다〉, 2026). 매일 정해진 양의 재료를 손으로 반죽하고 쌓아 올리며 겨룬 시간은 조각이 기억할 형태가 된다.4 배태된 형상은 물질로서의 시간이 작가의 몸이라는 “특정한 상의 가능한 행동과 관계 맺을 때” 빚어진다.5 작위와 순응의 반복을 통해 다른 무게와 부피로 이루어진 두 개의 상 – 신체와 조각 – 은 물질에 새겨진 시간의 기록이 된다. 한편, 뒤따르는 움직임이 가닿은 캔버스는 같은 시간 내에 파생된 또 다른 작업으로서 유령 같은 행위의 자국을 가시화한다(〈바닥에 눕혀, 손이 닿지 않은 자리가 남을 때까지〉, 2026). 조각과 평면은 상호 환원하려는 마주침 속에 서로의 존재를 환기하고, 공간은 이들을 담는 그릇으로 작동한다. 빚어진 면과 덩어리들이 각자를 지시하며 전시장 내부에 펼쳐질 때, 응축된 시간은 자립한 재료의 고유한 형식으로 드러난다.
이종환에게 회화는 시간과 함께, 물질의 생장과 소멸을 거치는 사건이다. 뻣뻣하게 굳은 환영을 해체하기 위해, 작가는 그리기와 파내기를 반복하고 진자 추와 쇠구슬로 엮은 기둥을 세운다. 서로를 무너뜨리고 또 의존하는 현실과 환영은 그 표면에서 인접한 경계를 허문다. 구멍 뚫린 그림의 틈새로 이식된 죽은 영지버섯, ‘불로초’는 비인간 존재의 생을 보존하는 동시에 영생을 꿈꾸는 인간의 모순된 기호다. 이에 맞서 작가는 용도를 다한 농지에 그림을 배양한다(〈Thawing in the Open Field〉, 2026; 〈What the Freeze Finally Thawed〉, 2026). 그곳에서 햇볕을 쬐고, 비와 바람을 맞은 그림은 영속성을 지닌 사물이 아닌 “되어감의 문법”으로 변화해 나가는 ‘사건’이 된다.6 다시 전시장에 놓인 그림 역시 잠깐 동안 변함이 없는 사건일 뿐이다.7 그림은 이 자족적인 생태계 속에 스스로의 생애 주기를 만들어 나간다. 일련의 과정 끝에 관객이 목격하는 것은 들썩이는 사물의 생, 혹은 사건의 한 가운데다. 느린 소멸을 향해 가는 그림은 시간과 함께 마모되고 기억과 함께 지속되면서, 비로소 하나의 생애를 갖는다.
《팝콘.옥수수.부스러기》가 보여주는 것은 현실을 닮은 또 다른 이미지가 아니다. 전시는 현실이 시간 속에서 경험되고 기억되는 방식, 부유하고 변형되는 양상에 대한 서로 다른 가설을 제시한다. 나아가 현실 자체가 시간 속에서 구성된 하나의 픽션이라는 관념을 내보인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여전히 시간의 안쪽에 위치해 있음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우리가 본 것은 다만 우리를 비추는 희미한 이미지일 뿐이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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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봉균 신종찬 이종환
《옥수수 팝콘 부스러기》
2026.10.14 - 10.25.
KEYSHAPE
(서울 영등포구 양평로 100 3층)